갈맷길, 부산의 아름다운 길
구간자유걷기 | 갈맷길700리 7-3 자유...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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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박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11 11:12 조회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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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맷길700리

갈맷길 7-3구간 자유걷기...210410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역사관 - 동래부동헌 - 장관청 -
송공단 - 동래시장 - 박차정의사 생가 - 충렬사 -
인생문 - 복천동 고분군 ~ 복천동 박물관 ~
북장대 ~ 동래읍성 북문 ~장영실 과학동산 ~ 동래읍성 역사관 ~
서장대 ~ 동래 읍성지 ~ 동래 향교

약 7.5 km...


지금은 부산에 속한 하나의 구인 동래구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동래도호부였습니다.
삼한시대에 건립된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동래읍성은 최초 조선 세종 28년인 1446년 때 동래현령 김시로가 축조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우왕 13년인 1387년에
박위 장군이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남문이었던 현 수안역을 비롯해 내성초,
복산동 행정복지센터 등의 경로로 세워졌다고.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로 성벽이 무너졌고,
이후 조선 후기 때인 영조 7년(1731년)에 6배가량 큰 범위로 다시 쌓았습니다.

2005년 4월 부산교통공사가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공사를 위해 땅을 파던 중 돌담이 발견됐습니다.
수안역은 조선 전기 동래읍성의 남문 위치입니다.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돌담이 있던 곳은
동래읍성의 '해자'로 밝혀졌습니다.
해자는 성 외곽에 판 도랑으로, 적군의 진격을 늦추는 방어시설입니다.
당시 조사에서는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약 100명 안팎의 유골, 무기류 등도 발견됐습니다.

동래읍성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송상현 동래부사를 비롯한 군·관·민이 일치단결해 저항한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외교와 국방, 경제의 중심지로서
동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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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현재까지 확인된 임진왜란 전쟁터 중에서
여러 종류의 가장 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역사관입니다.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의 생생한 모습은 물론, 목숨을 걸고 적에 맞선 선조들의
불굴(不屈)의 항쟁 정신과 모습을 잘 보여주는 교육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최초로 철도 역사(驛舍) 안에
만들어진 역사 전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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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동헌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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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 동헌(東軒)~
동헌(東軒)은 조선 시대에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수령의 살림집을
내아(內衙)라고 하는 데 대해 외아(外衙)라고도 합니다.
충신당은 동래부 동헌의 정당(正堂)으로, 이청(吏廳)·무청(武廳)·향청(鄕廳) 등
동래부 소속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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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청(將官廳)~
1972년에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공포를 꾸민 팔작지붕의 ㄱ자집입니다.
조선 후기 동래부(東萊府) 청사 건물의 하나로 이곳 군 장관들의 집무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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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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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宋公壇)~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제단(祭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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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 의사 생가~
박차정[1910~1944]은 부산 동래 출신으로,
근우회(槿友會)와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고
1944년에 순국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박차정 의사 생가는 1936년에 건립되었으나,
원래의 건물은 거의 파손되어 본래의 형태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박차정의사 숭모회는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복원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부산시에서 부지 매입비를,
국가보훈처에서 생가 건립비를, 동래구에서 도로 개설비를 각각 지원하여
2005년 7월 8일 과거 가옥의 모습에 근거한
박차정 의사 생가를 복원,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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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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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에서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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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1592년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송상현 동래부사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송공은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글을 나무판에 써 적진으로 던지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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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동래부사 송상현을 모시기 위해 선조 38년(1605년)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읍성 남문 근처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입니다.
그 후 인조 2년(1624년)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지면서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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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선열 92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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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뒷산으로 올라갑니다.

망월산[동래구]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산.

망월산은 산에서 바라보는 달빛이 좋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장대산 또는 칠산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산자락의 모양이 소쿠리 같다 하여 ‘소쿠리터’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해발 고도 106m의 망월산은 옛 동래부 동헌 등 관아 건물이 있던

동래읍의 뒷산으로서 동래의 중심이 되는 산이었습니다.

현재도 산줄기를 따라 동래읍성 성벽과 서장대·동장대 등이 복원되어 있으며,

남쪽 사면으로는 충렬사[안락서원]가 있어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까운 거리에 복천박물관, 복천동 고분군, 장영실 과학 동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래 시장이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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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가 있는 망월산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있는
쉼터에서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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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문~
인생문 고개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합니다.
첫째로는 임진왜란 당시 인생문 고개를 통해 피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하여 사람을 살려낸 고갯길이라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죽은 자들의 무덤을
성내에 둘 수 없어 성 밖에 있던 묘지[현재의 명장동 일대]로 옮기는
유일한 통로라 하여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에서 나온 지명으로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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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
6세기 이전의 부산지역 유일의 지배층 무덤이자
가야문화의 번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복천동 고분군은
부산 역사와 문화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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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박물관~
복천박물관은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부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고전문박물관으로 1996년 10월 5일에 개관했습니다.
7차에 걸친 발굴 조사로 밝혀진 169기의 유구와 각종 토기 및
철기류 등의 유물을 종합전시하였으며,
사적 제273호로 지정된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충부한 유물과
다양한 무덤 양식들은 아직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있는
가야의 신비를 푸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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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단비[ 永報壇碑 ]~
1909년(순종 3) 일제가 호적 대장을 거두어들이려고 하자
동래 사람들은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 대장을 함부로 내어 줄 수 없다며
동래 지역 13개 면 호적 대장을 모아서 마안산 기슭에서 태운 뒤
그 자리에 단을 쌓고 영보단(永報壇)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5년 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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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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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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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산북장대~
마안산은 동래의 진산인 구월산[윤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의 봉우리로 옛 동래읍의 주산에 해당합니다.
주능선을 따라 동래읍성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복천박물관·장영실 과학 동산· 복천동 고분군이 있으며,
또 산정 일대는 마안산 동래 사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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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가 있는 망월산, 아파트 뒤의 배산,

그 뒤에 금련산과 황령산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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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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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과학 동산과 동래읍성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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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과 읍민이
혼연일체가 돼 최후의 한사람까지 항전하다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최대의 격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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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과학 동산~
장영실 과학 동산의 총면적은 1,177㎡이며,
장영실의 발명품을 포함하여 조선 시대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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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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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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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 하였습니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설치하였는데,
앞쪽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쪽의 주조문(朱鳥門)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서문·암문·북문에는 성문의 보호를 위해

옹성(甕城,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성)을 부설하였고,
장대(將臺, 성 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로서 성 밖의 적을 살피거나 전투를 지휘하는 곳),

망루(望樓) 및 15개소의 보루(堡樓)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겨우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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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동래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설된 것으로 보이나
그 정확한 기록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건립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대성전은 1605년(선조 38)에 재건되었으며,
1635년(인조 13)에는 동래성(東萊城) 동문 밖으로 그 전체를 이건하였으며,
1744년(영조 20)에는 현재의 동래고등학교 뒤편으로 옮겼으나
군대 훈련장과 인접하였으므로 1784년(정조 8)
현재의 내성초등학교 자리로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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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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