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부산의 아름다운 길
구간자유걷기 | 갈맷길700리 7-3 자유...20102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박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0-21 08:25 조회314회 댓글0건

본문

#갈맷길700리
#자유구간걷기

갈맷길 7-3구간 자유걷기...201020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역사관 - 동래부동헌 - 장관청 - 송공단 - 동래시장 -
박차정의사 생가 - 충렬사 - 인생문 - 복천동 고분군 ~ 복천동 박물관 ~
북장대 ~ 동래읍성 북문 ~장영실 과학동산 ~ 동래읍성 역사관 ~
서장대 ~ 동래 읍성지 ~ 동래 향교 ~

약 8 km...

1592년(선조 25) 4월 일본군은 20여만 명의 대군을 9번대(番隊)로 나누어 침략을 개시하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인솔한 제1번 대는 병선 700여 척에 나누어 타고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먼저 부산포에 침입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중 일본군과 치른 최초의 전투는 부산진성 전투였습니다.

 4월 13일 일본군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조선 침략 선봉 제1군 1만 8700명의 대군은

700여 척의 병선으로 부산포에 침략해왔습니다.
부산진성의 민가는 300여 호로 군민을 다 합해도 실제 병력은 불과 1,000여 명이었는데,

 이러한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첨사 정발(鄭撥)과 부산진의 군민들은 분전 끝에 전사하였습니다.

 일본군은 부산진성 전투에서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개와 고양이까지도 죽여 버리는 잔혹함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이어 동래부를 침공하였고,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은,

지역의 병권을 가지고 있던 경상좌병사의 군과 인근 군현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성곽을 수호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상좌병사 이각(李珏)과 경상 좌수사 박홍(朴泓)은

도주하여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일본군은 대군을 동원하여 일시에 동래성을 세 방면에서 포위 공략하였고,

송상현이 지휘하던 동래부의 군민은 역시 분전 끝에 전사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유적이

2005년 이후 부산 도시 철도 4호선 수안역사 건설 과정에서 발굴되었습니다.
2011년 문을 연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에는 동래읍성 해자와 그 아래에서 발견된

동래부 군민의 인골, 무기류가 그대로 전시돼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현재까지 확인된 임진왜란 전쟁터 중에서
여러 종류의 가장 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역사관입니다.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의 생생한 모습은 물론, 목숨을 걸고 적에 맞선 선조들의
불굴(不屈)의 항쟁 정신과 모습을 잘 보여주는 교육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최초로 철도 역사(驛舍) 안에
만들어진 역사 전시관입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사회서비스 제공증명 확인을 할 때 발열체크를 하시는 최경수님...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출발 라운드 미팅을 합니다.
소독을 먼저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 맞추어
2Part로 나누어서 진행하며 기본 예방수칙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진행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선두조 일곱분 동래부동헌으로 출발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동래부 동헌(東軒)~
동헌(東軒)은 조선 시대에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수령의 살림집을
내아(內衙)라고 하는 데 대해 외아(外衙)라고도 합니다.
충신당은 동래부 동헌의 정당(正堂)으로, 이청(吏廳)·무청(武廳)·향청(鄕廳) 등
동래부 소속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과 좌우의 독경당(篤敬堂), 연심당(燕深堂), 동행랑(東行廊), 서행랑(西行廊)을 비롯하여

찬주헌(贊籌軒), 완대헌(緩帶軒), 동헌의 출입문이었던 동래 도호 아문(東來都護衙門)[망미루],

삼문인 독진 대아문(獨鎭大衙門)과 많은 관아 건물이 부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충신당과 연심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제외한 건물은 철거되었으며,

망미루와 독진 대아문은 금강 공원으로 옮겨져 충신당 건물만 본래의 위치에 보존되어 있으나,

전체 부지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장관청으로 향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장관청(將官廳)~
1972년에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공포를 꾸민 팔작지붕의 ㄱ자집입니다.
조선 후기 동래부(東萊府) 청사 건물의 하나로 이곳 군 장관들의 집무소입니다.
동래부는 예로부터 왜(倭)와 대치하는 국방상의 요충지로서
1655년(효종6)에 동래독진(東萊獨鎭)을 설치한 뒤 양산군(梁山郡)과 기장현(機張縣) 소속의 군병까지도 통합,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군사상의 지위가 강화되자 군 장관들의 집무소로 설치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1669년(현종10)에 동래부사 정석(鄭晳)이 창건하였습니다.
그뒤 1675년(숙종 1) 동래부사 어진익(魚震翼)이 중창하였고 1680년에는 부사 조세환(趙世煥)이 중창하였으며,

1706년 동래부사 황일하(黃一夏)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다시 세웠습니다.
본 건물 외에 행랑채, 대문이 딸려 있는데 여러 차례에 걸친 개조로 많이 변형되었으나

조선 후기 관아건물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장관청에서 단체샷~^^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5 

광각으로...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망원으로 한번 더...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송공단으로 향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송공단(宋公壇)~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제단(祭壇).

1608년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해마다 봄가을에만 제사지내던 송공사(宋公祠)에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순절한 4월 15일에도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에 전망 제단(戰亡祭壇)을 만들어

해마다 음력 4월 15일[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빼앗긴 날] 송상현, 정발(鄭撥), 조영규(趙英圭), 노개방(盧蓋邦),

그리고 임진왜란 때 함께 순절한 이들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임진왜란 때 송상현이 순절한

정원루 터에 송공단(宋公壇)을 만들어 농주산 전망 제단의 선열들의 위패를 옮겼고.

 1766년에는 임진왜란 때 다대진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들까지 추가로 제사를 지냈으나,

부산진성과 다대진성에서 순절한 이들을 정공단(鄭公壇)과 윤공단(尹公壇)에서 따로 제사를 지냄에 따라

1767년부터 송공단에는 동래읍성에서 순절한 선열들만 추모하게 되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동래시장을 지나갑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박차정 의사 생가~
박차정[1910~1944]은 부산 동래 출신으로, 근우회(槿友會)와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고 1944년에 순국한 여성 독립운동가입니다.

박차정 의사 생가는 1936년에 건립되었으나,

원래의 건물은 거의 파손되어 본래의 형태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박차정의사숭모회는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복원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부산시에서 부지 매입비를, 국가보훈처에서 생가 건립비를,

동래구에서 도로 개설비를 각각 지원하여 2005년 7월 8일 과거 가옥의 모습에 근거한

박차정 의사 생가를 복원, 건립하였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충렬탑~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충렬사에서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가 갑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들이 닥친 왜장(고니시 유키나가)이

동래성 남문 밖에 목패를 세우고

 “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 :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열어 달라)”라고 하자

동래 부사 송상현은 왜구(倭寇)보다 전투력이 최악의 열세(劣勢)임에도 불구하고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하며

결사항전(決死(抗戰)으로 맞서 저항을 하였고 장열하게 전사(戰死)하였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6 

 송상현의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천곡(泉谷)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년부터 동래부사로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과 더불어 항전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친에게

 “달빛에 비추인 외로운 성은 줄지어 선 군진을 높은 베개로 삼았고,

군신의 의리가 무거움에 부자의 은혜는 오히려 가벼운 듯 하구나

[孤城月暉列陣高枕 君臣義重父子恩輕]”라는 글을 남기고 순국하였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소줄당(昭茁堂)~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宋象賢) 동래 부사의 학덕과 충절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지은 서원.

使君忠節冠千齡, 古廟秋風木葉零
송부사의 충절은 천년에 뛰어 났는데, 옛 사당에 가을 바람이 불어 낙엽이 지는구나
精返雲天添列宿, 氣成河嶽護生靈
넋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되고, 장한 기개는 산이 되고 강이 되어 이 나라 백성을 호위하도다
深羞徹地何年雪, 怒髮衝冠一夜星
깊은 부끄러움은 땅에 사무치는데 이를 어느 해나 씻을고, 밤새도록 잠 못 이루어 성난 머리카락이 관을 찌르는구나
試上萊山山上望, 蠻煙萬縷至今腥
짐짓 래산에 올라 산 위에서 바라보니, 오랑캐의 연기가 일만가닥으로 아직도 피비린내나는 것 같도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충렬사 정화기념비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충렬사~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신 부산지방 순국선열의 영령을 모신 곳입니다.
현재의 충렬사는 1605년(선조 38년)에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동래읍성 남문 안에 충렬공(忠烈公) 송상현(宋象賢)을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1624년(인조 2년)에 선위사 이민구(李敏求)의 건의로

『忠烈祠』라는 사액을 받고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인생문으로 향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군관청(軍官廳)~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군관들의 집무소.
군관청(軍官廳)은 조선 시대 동래부(東萊府) 청사 건물의 하나로,

군관들의 집무소로서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 관아 건물입니다.

동래부는 일본과 대치하는 국방상의 요충지로 인식되어 1655년(효종 6)에 동래 독진(東來獨鎭)이 설치되었습니다.

동래 독진은 양산군 및 기장현(機張縣) 소속의 군사까지도 통합하여 지휘할 수 있게 한 군사 조직으로,

 동래부사가 동래 수성장(東萊守城將)을 겸임하여 동래 독진의 군사를 지휘하고 군사 사무를 처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동래 지역의 군사적인 입지가 강화됨에 따라 군사의 수도 늘었을 것이며,

그들의 집무소인 무청(武廳)도 증가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7 

군관청(軍官廳)을 지나갑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8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8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8 

인생문~
인생문 고개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합니다.
첫째로는 임진왜란 당시 인생문 고개를 통해 피난한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하여

사람을 살려낸 고갯길이라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죽은 자들의 무덤을 성내에 둘 수 없어

 성 밖에 있던 묘지[현재의 명장동 일대]로 옮기는 유일한 통로라 하여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에서 나온 지명으로도 전합니다.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8 

인생문에서 단체샷~^^

 

 

 

3886c22c68e45cdc272c67b8d3a0a9be_1603238 

인생문~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부산복천동고분군[ 釜山福泉洞古墳群 ]~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사적.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복천동고분군은 1981년 6월 9일 사적 제27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3세기대에서 7세기대까지 조영되었으며 4∼5세기가 그 중심연대입니다.

대규모의 고분군이 복천동 일대 대포산의 중앙부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온

그리 높지 않은 구릉 위에 밀집 분포되어 있으며,

이 고분군은 1969년 9월부터 1994년에 이르기까지 6차례에 걸쳐

동아대학교와 부산대학교박물관 및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영보단비[ 永報壇碑 ]~
1909년(순종 3) 일제가 호적 대장을 거두어들이려고 하자

동래 사람들은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 대장을 함부로 내어 줄 수 없다며

동래 지역 13개 면 호적 대장을 모아서 마안산 기슭에서 태운 뒤

그 자리에 단을 쌓고 영보단(永報壇)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5년 비를 세웠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영보단(永報壇)’이라고 비제(碑題)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을묘 사월 일 군민 공립(乙卯 四月 日 君民共立)[을묘년 4월 군민이 함께 세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1 

복천박물관~
복천박물관은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부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고전문박물관으로 1996년 10월 5일에 개관했습니다.

7차에 걸친 발굴 조사로 밝혀진 169기의 유구와 각종 토기 및 철기류 등의 유물을 종합전시하였으며,

 사적 제273호로 지정된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충부한 유물과 다양한 무덤 양식들은

아직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있는 가야의 신비를 푸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복천박물관은 개관 이후로도 인근지역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여

부산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해 나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축적된 연구성과를 다향한 학술세미나 및 특별전을 통해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역사교육장으로서의 역할에도 내실을 기하고 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소연정사를 지나고 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북장대로 향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마안산북장대~
마안산은 동래의 진산인 구월산[윤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의 봉우리로 옛 동래읍의 주산에 해당합니다.
주능선을 따라 동래읍성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복천박물관·장영실 과학 동산· 복천동 고분군이 있으며,

 또 산정 일대는 마안산 동래 사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북장대에서 단체샷~^^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시원한 북장대에서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가 갑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북장대에서 바라보는 망월산...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북문으로 향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북문에서 단체샷~^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장영실 과학 동산~
장영실 과학 동산의 총면적은 1,177㎡이며,

장영실의 발명품을 포함하여 조선 시대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장영실 과학 동산은 동래읍성 북문 광장에 있는데,

 이곳에는 북두칠성을 주제로 혼상과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혼천의(渾天儀), 앙부일구(仰釜日晷),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현주일구(懸珠日晷),

풍기대(風旗臺), 수표(水標), 선화당, 관상감, 창덕궁 측우기 등 11종을 배치하였고,

혼상 좌·우측에는 동·서양 해시계 2종을 배치하였습니다.

역사관에서 북문의 통행로 주변에는 세종대왕 기념관 일구대, 평면 해시계,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 등

 5종을 현장 조사·제작·설치까지 전 과정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동래구의 위도와 경도에 맞게 설치하였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2

 

동래읍성 역사관으로 향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동래읍성 역사관뒤 그늘에서 편안한 걷기 활동을
돕기 위한 김용서 강사님 교육을 합니다.
발목 건강 유지법의 스트레칭을 복습하고 있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고관절 유연성 향상 스트레칭을 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스트레칭을 교육받고 동래읍성 역사관에서 해설사의
동래읍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길동무님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서장대로 향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서장대~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서장대에서 단체샷~^^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동래 향교로 향합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동래향교~
동래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설된 것으로 보이나 그 정확한 기록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건립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대성전은 1605년(선조 38)에 재건되었으며,

1635년(인조 13)에는 동래성(東萊城) 동문 밖으로 그 전체를 이건하였으며,

 1744년(영조 20)에는 현재의 동래고등학교 뒤편으로 옮겼으나 군대 훈련장과 인접하였으므로

 1784년(정조 8) 현재의 내성초등학교 자리로 다시 옮겼습니다.
이러한 위치 설정은 ‘학교는 행정 기관 좌측에 세운다’는 전통을 따라

동래부 동헌(東萊府東軒) 좌측에 자리 잡아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한 자리 또한 저습하다 하여

1813년(순조 13)에 다시 지금의 동래구 명륜동 자리로 이건하였습니다.

이후 1949년에는 전국 유림 대회의 결의로 문묘에 봉안해 오던 중국 유현을 대폭 줄이고,

동무와 서무에 있던 우리나라의 18현은 대성전 안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유림 회관을 건립하였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동래 향교에서 단체샷~^^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갈맷길 수첩에 7-3 인증 스탬프를 찍고 계시는 길동무님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소독하고 마무리 미팅을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2eeeae4820781cd92692a16fed8209b_1603253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HOME
  • 유튜브
  • 카카오플러스친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