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부산의 아름다운 길
구간자유걷기 | 갈맷길700리 7-3...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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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의아름다운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2-02 23:03 조회3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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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맷길700리

7-3

동래구청 - 동래부동헌 - 장관청 - 송공단 - 동래시장 -

박차정의사 생가 - 충렬사 - 인생문 ~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

북장대 ~ 북문 - 서장대 - 동래향교

약7km...

갈맷길700리 7-3 구간은 갈맷길 정규 코스엔 없습니다...

(주)부산의 아름다운길에서만 운영하는 역사갈맷길 이랍니다...

추운 날씨가 예보되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갑니다...

오늘은 동래의 역사 유적을 둘러보는 구간이라 그리 빠르게

댕길 이유가 없어 느릿하게 산책과 수다로 유유자적 걷게 되는 길 입니다...

출발하겠습니다...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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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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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역 내에 있는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부산 도시 철도 4호선 수안역 공사 중에 발견된 동래읍성 해자와 그 안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뼈, 다양한 무기, 생활용품 등을 복원·전시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참혹한 모습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에 맞선 선조들의 항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2005년 4월 부산교통공단[현 부산교통공사]의 부산 지하철 3-2호선[현 부산 도시 철도 4호선] 수안역 건설 공사 중

동래읍성 해자가 발견된 뒤 2005년 7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해자에서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약 100명 안팎 사람들의 뼈와 다양한 무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에 발굴 지도 위원, 부산광역시 등과 의논하고, 문화재청의 협조를 받아 출토 유물 등의 전시관을 수안역 안에

짓기로 한 뒤 2011년 1월 28일 공사를 끝내고,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을 개관하였다. 이

로써 부산 도시 철도 4호선 수안역은 임진왜란 동래읍성 전투의 역사(歷史)가 있는 역사(驛舍)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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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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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동헌을 가기 위해 수안인정시장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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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이른 시간 인지라 인기척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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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동헌에 도착했으나 코로나19로 폐쇄 조치 중...

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공간으로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객사 다음으로 중요한 관아시설로

이청(吏廳), 무청(武廳), 향청(鄕廳) 등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동래는 일본과 최접경지로서 한반도 제일의 관방이자 전략요충지로 중시된 만큼 일찍부터 읍성과 관아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더욱 중시되어 태조 때부터 진을 두고 병마사가 판현사를 겸하도록 하였고,

명종 12년(1547)에 도호부로 승격되어 정3품 당상관으로 부사를 임명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동래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크게 인식되어 효종 6년(1655) 경주진관에 속해 있던 것을

독진(獨鎭)으로 독립시키고, 관아도 대대적으로 복구하였다.

동래부 관아는 대원군 집권기까지 빈번히 증·개축되다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를 겪고,

부사 정현덕의 주도로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서 읍성과 관아를 대대적으로 증·개축하였다.

그러나 1910년 10월 일제는 오랜 행정중심으로서의 위상과 정통성을 말살하고

일본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부산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동래부를 없애고 동래군으로 격하시켰다.

동헌의 중심 건물인 충신당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동래군청 청사로,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산군 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과 좌우의 연심당과 독경당, 문루였던 망미루, 동래부 동헌 외대문 등

많은 관아 건물들이 부속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충신당과 연심당을 제외한 건물들은 철거되었으며,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은 온천동 금강공원 일원으로 옮겨졌다.

2014년 독경당, 찬주헌을 복원하고 망미루와 동래부 동헌 외대문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이전해왔으며,

2015년 고마청을 복원하였다.

동래부 동헌 일곽은 조선시대 부산(동래)의 행정, 국방, 외교, 교역 업무를 도맡았던

제일 관방의 위상을 함축하는 관아시설일 뿐 아니라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개혁성론에 따라 근대적 읍성의 축조가 최초로 구현되는 등 조선시대 관방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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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 부터 망미루, 찬주헌, 독진대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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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치안센터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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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청...

조선 후기 동래부 군장관들의 집무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동래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1655년(효종 6)

동래부에 독립적인 군사권을 갖게 하는 독진(獨鎭)이 설치된 후, 1669년(현종 10)에

동래부사 정석(鄭晳)이 장관청을 처음 건립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동래부사 어진익이 중건하였고, 1680년(숙종 6)에는 동래부사 조세환이 중건하였다.

이후 1706년(숙종 32)에 동래부사 황일하(黃一夏)가 향청이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1815년(순조 15) 3월에 현재 위치에 옮겨 온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습이 바뀌어 본채는 1998년 2월에 해체·보수를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으나,

행랑채는 변형된 모습 그대로 있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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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시장

동래 시장(東萊市場)의 기원은 조선 시대 읍내장이다. 동래 지역의 시장에 대한 기록은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서 처음 언급된다.

시장이 형성된 것은 그 이전부터로 생각된다.

1924년 공설 시장으로 지정 받았으며, 1930년 목조 건물이 세워졌다. 1937년에 동래 공설 시장으로 승격되었다.

1968년 12월 22일에 화재로 소실된 시장 목조 건물 위치에 1970년 8월 6일에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준공하였다.

1970년 9월 7일에 동래시장번영회로 시장을 등록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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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

송공단(宋公壇)은 1742년 동래부사 김석일이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한 장소인

정원루(靖遠樓)의 옛터에 설치한 단으로 송상현을 비롯하여 왜란 때 순절한 여러 선열들을 모신 곳이다.

송공단이 건립되기 전에는 동래읍성 남문 밖의 조그마한 야산 농주산(지금의 동래경찰서 자리)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선열들을 추모하는 농주산 전망 제단을 세워 동래부사 송상현, 양산부사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을 비롯한 순절의사들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1742년(영조 18)에 지금의 위치에 송공단을 옮겨 세웠다.

1760년에는 동래부사 홍명한이 유림의 여론에 따라 부산첨사 정발과 함께 싸우다 전사한 부사맹 이정헌을 모셨으며,

1766년에는 다대첨사 윤흥신, 유생 양조한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송공단 비석은 2005년 11월 제14대손 송해석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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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벽화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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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의사 생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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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으로 유명한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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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의사 생가...

박차정 의사는 1910년 5월 8일 부산 동래읍 복천동에서 출생하여 동래 일신 여학교(현 동래 여고)를 졸업하였으며

여러 항일 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렀다.

일본군과 전투 중 어깨에 총상을 입은 후유증으로 194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한국 여성 독립운동의 거목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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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부광반점 역시 탕수육과 초마면으로 유명한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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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가는 길...

왼쪽 담벼락은 동래고등학교...

제가 원서를 넣고 시험을 치러가지 않고 조조 영화를 보러 갔던 기억이

이 곳을 지날 때 마다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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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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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부산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의 영령을 모신 사당으로

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산 교육장이자 호국충절의 요람지이다.

지금의 충렬사는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윤훤에 의해 동래읍성 남문 안에 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사당 송공사(宋公祠)가 세워지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한다.

1624년 선위사(宣慰使) 이민구의 청으로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이 내려졌으며

부산진성 전투 때 순절한 충장공 정발을 모시게 되었다.

그 후 1652년 동래부사 윤문거가 송공사가 좁고, 성문이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가 되므로 그 학행과 충절을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안락동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한 후

강당과 동재 · 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고 사우와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

1709년(숙종 35)에는 충렬공 송상현과 충장공 정발이 순절할 때 함께 전사한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 유생 문덕겸 · 양조한, 비장 송봉수와 군관 김희수, 겸인 신여로,

향리 송백, 부민 김상 등의 위패를 모신 별사(別祠)를 옛 송공사 터(지금의 송공단)에 건립했다.

1736년 별사에 모셨던 분들을 지금의 충렬사에 모셨으며, 1772년에는 다대진첨사 윤흥신을 추가로 모셨고,

송상현의 첩 금섬, 정발의 첩 애향을 위해 충렬사 동문 밖에 사당을 세웠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충렬사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규모로 보수, 정화한 후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모든 선열의 위패를 충렬사로 옮겨 직책 또는 직위가

부여된 순서에 따라 신위를 모셨다. 충렬사에는 93신위(본전 89신위, 의열각 4위)를 모시고 있다.

충렬사는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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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내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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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내 군관청과 동장대는 겨울에는 출입이 금지가 되어 가 볼 수 없습니다...

큰 도로를 가지 않고 가는 샛길이 있다하여 뒤를 따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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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 하시면서 잘 찾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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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언덕...

에고 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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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갈 때 마다 큰 웃음 주시는 큰 화장실...

군관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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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 복천박물관, 북문, 북장대, 3.1기념탑

다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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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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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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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문을 지나 3.1독립운동기념탐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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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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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른쪽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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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길이 생각처럼 만만칠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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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사람잡는다는 은근한 오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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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기념탑...

만세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마안산에 세워진 이 기념탑은 1919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3・1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8월 15일 착공하여 1996년 3월 1일 완공하였다.

이 탑은 부지가 2,310㎡ 탑 전체 높이는 21.6m, 좌대는 842㎡이다.

독립운동 모습을 새긴 높이 6m의 원추형 군상에는 기미 독립 선언서 공약 3장이,

탑 기둥에는 건립 취지문과 독립 운동 약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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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탑을 뽀죡하게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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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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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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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북장대는 성내 북쪽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군대를 지휘하기에 용이했다고 한다.

북장대에서는 장산, 광안대교, 동장대, 배산, 금련산, 황령산, 부산시청, 복천동 고분군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데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니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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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에서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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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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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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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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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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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북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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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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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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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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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역사관과 장영실 과학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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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전투 포토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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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북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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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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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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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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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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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종점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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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성곽을 따라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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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가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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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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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향교 역시 출입이 안됩니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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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천천히 걸었습니다...

동네 마실 나가듯이 그렇게 슬금슬금 걸었습니다...

동래의 유적지는 코로나19로 인한 거의 모든 곳이 폐쇄가 되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갈맷길 함께 걷고 싶으시다면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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